남원시 주천면 고기 삼거리에서 정령치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고기댐 아래서 만날 수 있는 ⓒ 사진 최순호기자 choivon@naver.com
남원시 주천면 고기 삼거리에서 정령치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고기댐 아래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듯한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5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이 소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슬픈 소나무라 생각했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이 된 청년은 자신이 살던 마을 주민을 빨치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암호로 소나무 아래 돌을 쌓았다고 한다.
발각된 청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나무 아래서 집단 희생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지리산 자락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소나무를 통해 보듯 다들 탄식했다.
필자는 지난 2022년 한 해 동안 진실화해위원회 '남원시 주천면-덕치리 집단희생-적대세력사건 구술채록 연구용역'을 맡아 진행했다.
연구용역을 진행하기 전에는 2021년 한 해 동안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조사를 위해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가재상흔'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과저에서 '혹부리 소나무'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단 한 명의 구술자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묻기도 했으나 신기하게도 아는 사람이 전무했다. 더 황당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주천면 고기리-덕치리 지역에서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 '혹부리 소나무' 아래에서 희생된 사람을 단 한 명도 확인할 수 없었다.
빨치산이 된 청년이 자신이 살던 마을 주민을 위해 이념을 넘어선 인간애를 발휘한 숭고한 이야기다. 당연 청년의 넋은 추앙받아 마땅하고 그가 누구인지 세상에 알려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희생된 청년과 마을 주민들은 오간데 없고 소나무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참 뒤집어졌다.
지난해 주천면은 손중열 남원시의원의 발의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를 세웠다.
위령비에 당시 희생된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위령비에는 소나무 아래에서 희생된 빨치산 청년과 마을주민들의 이름이 빠져있다.
혹부리 소나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당시 희생된 청년과 마을주민들의 이름을 찾아 위려이에 새겨 넣어야 마땅하다. 아니면 혹부리 소나무에 얽힌 전설은 그냥 카더라 통신의 '전설의 고향'일 뿐이다.